아시아계 미국인 '영주'의 이름은 미국 이름이 아닐까?… P&G가 던진 묵직한 질문
아시아계 미국인 '영주'의 이름은 미국 이름이 아닐까?… P&G가 던진 묵직한 질문
  • 김수경
  • 승인 2022.05.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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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API)들이 겪는 이름과 관련한 차별 문제에 주목
"AAPI의 이름을 미국 이름으로서 존중하고 이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높일 것"
R/GA 대행… 스태프 전원 AAPI로 구성
배우 윤여정. ⓒ후크엔터테인먼트

지난 2021년 국내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씨는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제 이름은 윤여정(Yoon Yeo-Jeong)입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유정'이라고 부르시는데, 오늘은 모두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1년 후인 2022년 3월, 윤여정 씨는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올라 또 한 번 이름과 관련한 발언을 했다.

"지난해 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고 불평했는데, 올해 (제가 읽어야 할) 후보자들 이름을 보니 발음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발음 실수에 대해 미리 사과드립니다."

각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고 부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기본적인 예의지만, 언어적 차이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

미국에 거주하는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sian American Pacific Islander, 이하 AAPI)에게 있어 이 문제는 윤여정 씨 사례처럼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겪어야만 하는 불편한 일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이름으로 살아가는 AAPI들에게 자신의 이름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13일 글로벌 광고 전문 매체 애드에이지(Ad Age)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형 생활용품 제조기업 프록터앤드갬블(이하 P&G)이 AAPI 문화 유산의 달인 5월을 맞아 AAPI의 이름에 관한 광고 캠페인 'The Name'을 선보였다.

이 광고는 미국에 사는 한국계 미국인인 엄마와 그의 딸 '박영주(Yeong Joo Park)'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갓 태어난 영주를 품에 안은 엄마는 딸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영주야 너는 완벽하단다. 하지만 늘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며 "그건 아마도 너의 이름이 널 다른 사람과는 어딘가 다르게 느끼도록 만들기 때문일거야"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영주'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미국인과는 어딘가 다르게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엄마는 이어 "물론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담컨대 너에 대해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있을거야"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학교에 간 영주는 친구들로부터 낯선 시선을 받기도 하지만, 영주의 이름을 부르며 먼저 다가와 준 친구도 만나게 된다. 또,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영주의 이름을 '예영 조'라고 잘못 발음하자, 영주는 선생님에게 다가가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다시 말하는 등 위축되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성장한다.

마지막으로 엄마는 "영주라는 이름은 강인하고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의미란다. 난 네가 그렇게 되리라 믿어"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어 광고는 "소속감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AAPI의 이름을 축복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P&G 측은 "모든 사람은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이는 우리 정체성의 초석이 된다"며 "많은 AAPI들의 이름은 깊은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지만 편견과 무관심, 또는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잘못된 인식을 초래하고 잘못된 발음으로 불려지곤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캠페인은 AAPI의 이름을 미국 이름으로서 존중하고, 이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동시에 이름의 의미와 발음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 모두가 더 큰 소속감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P&G가 '박영주(Yeong Joo Park)'라는 이름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8%가 이를 미국 이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앵글로색슨(Anglo-Saxon)식 이름을 미국 이름으로 여기고 있었다.

또한 응답자의 83%는 자신의 정체성과 유산, 자아, 가족과의 관계 등에 있어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미국인 중 절반 이상이 인종이나 민족에 상관없이 자신의 이름이 잘못 발음되는 것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The Name' 캠페인은 광고대행사 R/GA가 대행했다. 이번 캠페인은 민감한 문제에 진정성있게 접근하기 위해 제작에 참여한 모든 팀원을 AAPI로 구성했다.

중국인인 가브리엘 시우 힌 청(Gabriel Siu Hin Cheung [Gae-bri-el Seew-Heen Chung]) 글로벌 제작전문임원(Global Executive Creative Director)을 비롯해 싱가포르계 하카 중국인 자비에 테오 포 지안(Xavier Teo Por Hsian [Zhāng bó xián]), 필리핀인 레아 알폰소(Leah Alfonso [LAY-uh al-FOHN-s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 CD)가 기획에 참여했다.

프로덕션 부문에는 일본계 캐나다인인 고 이로모토(Goh Iromoto [GOH ee-roh-MOH-toh]) 감독과 중국인 소피아 양지 루(Sophia Yanjie Lou [so-FEE-uh yian ji-eh lu]) 편집자, 인도·케냐계 미국인인 소날 히다(Sonal Heda [SOH-null HHiy-D-ah]) 책임 프로듀서가 각각 참여했다.

P&G와 R/GA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AAPI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 '#Our Names Belong'를 사용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공유할 것을 제안했다. P&G는 AAPI 커뮤니티와 파트너십을 맺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인식 개선 활동을 펼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 자료와 도구를 지원하고 있다.

P&G는 그간 'The Look', 'The Talk' 캠페인을 통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했으며, 'The Pause' 캠페인에서는 성소수자(LGBTQ+)들에 대한 차별 문제를 꼬집었다. 이번 'The Name' 캠페인에서는 AAPI에 대한 차별을 짚음으로써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편 지난 2020년 미국에서 시작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인 'BLM(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에 이어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내 급증하고 있는 AAPI에 대한 차별과 증오 범죄를 막기 위한 운동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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