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월스트리트의 '겁 없는 소녀', 마스크 대신 레이스를 두르다
뉴욕 월스트리트의 '겁 없는 소녀', 마스크 대신 레이스를 두르다
  • 김수경
  • 승인 2020.09.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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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긴즈버그 대법관 타계 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 레이스 옷깃 오마주하며 추모
SSGA, 맥칸 월드그룹과 '겁 없는 소녀' 새로운 캠페인 집행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을 오마주 한 '겁 없는 소녀' 상. ⓒSSGA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에 맞서 새로운 심볼로 떠 오른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 상이 마스크를 벗고 목에 레이스를 둘렀다.

'겁 없는 소녀'는 최근 별세한 미국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자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86세) 연방대법관을 추모하기 위한 오마주(hommage, 존경·경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선보인 것. 

22일 글로벌 광고 전문 매체 애드에이지(Adage) 보도에 따르면 지난 18일(현지시간) 긴즈버그 대법관이 별세한 직후 '겁 없는 소녀' 상은 긴즈버그 대법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레이스를 목에 감았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평소 까만색 법복 위에 다양한 장식의 옷깃을 둘러 목 부분을 꾸며왔다. 그의 화려한 옷깃은 단순히 어두운 법복을 화려하게 만들어 준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긴즈버그 대법관의 화려한 옷깃은 전통적으로 남성들을 위한 유니폼이었던 법복을 당당하게 여성화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긴즈버그 대법관의 결정을 강조하는 일종의 '무기' 역할을 했다. 그는 다수의 의견을 제시할 때는 주름 장식이 달린 옷깃을,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는 뾰족한 장식의 옷깃을 둘렀다.

미국 금융계에 만연한 남성 중심적인 환경에 맞서고 성 불평등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제작된 '겁 없는 소녀' 상은 목에 레이스 카라를 두름으로써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성 불평등에 맞서 온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겁 없는 소녀' 상은 세계 3대 자산운용사인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어드바이저(SSGA)가 지난 2017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선보인 동상이다. 이 동상은 여성에 대한 편견에 맞서겠다는 어린 소녀의 당당한 의지를 보여주며 전세계인들의 찬사를 이끌어 냈고, 여성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념비로 자리잡았다.

뉴욕타임스(NYT)의 SSGA 전면 광고. ⓒ애드에이지

SSGA는 뉴욕타임스(NYT)에 전면 광고를 싣고 목에 레이스 카라를 두른 '겁 없는 소녀' 상의 사진과 함께 'Here’s to the original(겁 없는 소녀의 원조격인 긴즈버그를 위하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전까지 '겁 없는 소녀' 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SSGA는 긴즈버그 대법관의 별세 소식을 접한 직후 광고대행사 맥칸 월드그룹(McCann Worldgroup)과 함께 빠르게 추모 캠페인을 기획해 8시간 만에 대중에 선보였다.

마스크를 쓴 '겁 없는 소녀' 상. ⓒSSGA

맥칸 월드그룹은 2017년 이 캠페인으로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비티 축제인 칸 라이언즈(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에서 글래스(Glass), PR, 아웃도어(Outdoor), 티타늄(Titanium) 4개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총 18개의 라이언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법복을 입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영화사 진진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지난 50년 간 남성 중심의 미국 법조계에 성차별의 부당성을 알리며 여성의 법적 지위 향상에 앞장 서 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긴즈버그 대법관을 '성 평등의 법률적 선구자'로, NYT는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라고 각각 표현했다.

한편 진보 성향이 두드러졌던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이 타계하면서 그의 후임 인선이 6주 남은 미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후임으로 임명할 경우 미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5일 또는 26일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을 발표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