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먹는 애플 신규 광고… '친환경' 앞세운 '그린워싱' 들통
욕 먹는 애플 신규 광고… '친환경' 앞세운 '그린워싱' 들통
  • 권경은
  • 승인 2023.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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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신제품 행사서 선보인 '어머니 대자연' 캠페인, '그린워싱' 비판 직면
"친환경 외치면서 소비자에게 자주 제품 바꾸도록 유도하는 마케팅은 모순" 지적
껍데기 뿐인 '친환경' 광고는 허위정보

애플(Apple)이 지난 12일(현지시간) 신제품 행사에서 새 광고 캠페인 '어머니 대자연, 환경 보고 받으시는 날(Mother Nature)'을 선보였다.

팀 쿡(Tim Cook) 애플 최고 경영자(CEO)와 임원진들이 오는 2030년까지 모든 제품에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각 부문 별로 진행하고 있는 계획을 '대자연'에게 브리핑하는 내용의 5분 짜리 영상 광고다.

애플의 크리에이티브를 전담해 온 TBWA\Media Arts Lab(TBWA\MAL, 미디어아츠랩)이 대행하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인 옥타비아 스펜서(Octavia Spencer)가 '대자연'으로 출연해 애플의 탄소중립 계획을 유머러하게 전달해 눈길을 모았다.

그런데 애플 광고가 공개된 직후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언론과 소비자들이 환경 문제에 민감해졌기 때문이다.

'그린워싱'은 '그린(green)'과 '세탁(white washing)'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친환경을 표방하고 홍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친환경 경영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13일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이 친환경 기업이라는 주장에 있어서 가장 큰 모순은 소비자에게 자주 제품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애플이 새로운 아이폰을 사게 하기 위해, 기기의 재사용과 수리를 어렵게 해 왔다는 점이 친환경 목표와 상충한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애플에서 탄소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영역은, 새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후 광고에 담긴 나머지 주장들에 대해도 조목 조목 반박했다.

포장 재질로 플라스틱 대신 종이를 사용하겠다고 했는데,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과 나무를 잘라 만드는 종이 중 어느 쪽이 더 환경에 유해한 지는 입증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비행기 대신 배를 통해 운송을 하겠다는 계획과 관련해서도 해상 운송은 항공 운송보다 탄소 배출량은 적지만 바다에 오염물을 직접 배출하므로 해양 운송이 더 친환경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국내에서도 친환경 기업이라는 광고를 했다가 '그린워싱'이라는 반박을 당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지난 달 말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는 국내 대기업들의 '그린워싱'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이미지 약 6만 건을 분석한 결과, 165곳의 기업이 650개의 '그린워싱'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그린피스에서는 '그린워싱'이 심각한 게시물을 뽑는 투표를 진행해 '인스타그램 최악의 그린워싱 기업'을로 선정했다. 그 결과, 1위는 롯데칠성음료의 아이시스 8.0, 2위는 삼성스토어의 BESPOKE(비스포크) 무풍에어컨, 3위 한진의 해외 배송사업, 4위 LX인터내셔널의 콘덴싱 보일러, 5위 GS칼텍스의 텀블러가 꼽혔다.

그린피스 분석에 의하면, 인스타그램 이미지 게시물에서 '그린워싱' 유형 중 가장 많은 것은 자연 이미지 남용(51.8%)이었고, 책임 전가(40.0%), 녹색 혁신 과장(18.2%)이 뒤를 이었다. 두 가지 이상의 유형이 쓰인 게시물은 23.3%를 차지했다.

'그린워싱' 광고에 대한 언론, 시민 단체의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도 규제안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영국과 프랑스의 친환경 관련 규제를 참고해 '그린워싱'에 대한 구체적인 위반 사례 등을 규정한 관련 심사 지침을 제시했다.

'그린워싱'에 대한 규제가 먼저 정비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구체적인 내용과 증거가 있을 때에만 기업이 '친환경'이라는 용어를 쓸 수 있다. 업계지에 따르면, 지난 1월 영국 소비자들이 패션 산업의 '그린워싱' 가능성을 제기했고, 규제를 담당하는 부처인 CMA(Competition and Markets Authority)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 3곳에 대한 '그린워싱' 조사에 착수했다.

'그린워싱'이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부 규제도 강화되면서, 친환경 광고를 만드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최근 유니레버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크리에이터들은 지속가능성 문제를 다루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레버에서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콘텐츠를 통해 지속가능성 문제를 다루고 싶다고 대답한 경우는 76%였으며 이 중 84%는 지속가능성이나 환경 이슈를 실제로 언급하는 것은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에이터들이 지속 가능성 문제를 다루는 것을 회피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그린워싱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38%)' 때문이었다.

껍데기 뿐인 '친환경' 광고는 허위정보(disinformation)일 뿐이다. 진짜 친환경적인 기업의 가치가 부각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