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형 기술, 인간의 정체성·관계성을 흔들다"… 분더먼 톰프슨
"몰입형 기술, 인간의 정체성·관계성을 흔들다"… 분더먼 톰프슨
  • 권경은
  • 승인 2023.10.30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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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이언즈 2023 세미나 리뷰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미디어의 영향력과 관련해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시뮬라크르'는 실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것, 더 나아가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실재처럼 인식되는 것들을 말한다.

몰입형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상 세계에서 원하는 누군가가 되어 볼 수 있고, 가상의 나를 기반으로 새로운 연결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올해 칸 라이언즈 분더먼 톰프슨(Wunderman Thompson·이하 WT) 세미나에서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변화하는 정체성과 인간관계, 그리고 크리에이티브의 문제를 다뤘다.

독일의 크리에이티브 대행사인 WT에서는 지난 6월 23일 '미래의 크리에이티브 – 노멀 시대의 종료(No New Normal: Rewiring Creativity for an Unimaginable Future)'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칸 라이언즈에서 진행했다. 세미나에는 WT 글로벌 인텔리전스 디렉터(Global Intelligence Director)인 엠마 츄(Emma Chiu)와 크리에이티브 데이터(Creative Data) 글로벌 부문장Global Lead)인 제이슨 카멜(Jason Carmel)이 연사로 나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진 일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변화하고 있는 정체성,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들과 함께 바이오 의족과 팔을 착용하며 생활하는 가운데 저서 '휴먼 2.0'을 집필한 패트릭 케인(Patrick Kane)도 무대에 섰다.

츄 디렉터는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 세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결과, 우리의 정체성도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WT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 중 76%가 매일의 일상 생활을 기술에 의지하고 있다고 답했고 93%는 미래에 기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어 츄 디렉터는 물리적 세계에서의 정체성과 가상 세계의 정체성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WT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76%의 응답자가 "자신의 디지털 트윈스인 아바타를 통해 실재 세상에서는 갖지 않은 개성을 표현한다"고 답했고 51%의 응답자는 "물리적 세계보다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이 더 진짜인 것(authentic and true)처럼 느낀다”고 응답했다.

츄 디렉터는 소비자들에게 가상세계에서의 삶의 중요해진 맥락에서 브랜드들도 가상 세계에서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례로 카타르 항공의 큐버스(Qverse)라는 가상 앰버서더, 네슬레의 AI 챗봇 루스(Ruth)를 소개했다.

츄 디렉터에 따르면 루스(Ruth)는 소비자들 각각에 맞는 쿠키를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AI 기반 챗봇이다. 루스는 소비자들에게 개인 맞춤형 레시피를 제공할뿐 아니라 대화를 통해 소비자와 개인적 관계를 구축한다. 

츄 디렉터는 "브랜드는 적극적으로 개인별 맞춤형 브랜드 앰배서더를 통해 소비자들과 소통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AI 기반 맞춤형 앰배서더들은 소비자와 일대일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AI 앰배서더도 성장하게 되며, 소비자와의 개인적 관계도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슬레의 AI 챗봇 '루스(Ruth)'. ⓒ네슬레

츄 디렉터에 따르면, 셀럽들 역시 자신의 외모나 목소리를 탑재한 디지털 트윈스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모델 에바 헤르지고바(Eva Herzigova)는 자신의 디지털 트윈스을 만들어 여러 개의 캠페인과 패션쇼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가수 그라임스(Grimes)의 목소리는 AI의 목소리로 활용되고 있다.

츄 디렉터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정체성뿐 아니라 인간 관계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0년 전 영화 '허(Her)'에서 10년 전 질문했던 질문들, 누구를 사람들이라고 불러야 할지,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인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의 문제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현재 미디어 속에서 성장하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실재와 가상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츄 디렉터에 따르면, 현재 태어나고 있는 아기들을 포함한 젊은 층, 소위 '알파' 세대는 자신이 교류하는 존재가 실재인지 아닌지에 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츄 디렉터는 영화 배우 키아누 리브스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이러한 점을 보여줬다.

리브스는 자신의 일화를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가 아이들에게 영화 '매트릭스(Matrix)'에 대해 설명하면서 '실재(real)'와 '실재가 아닌 것(not real)'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이들은 그러한 차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번째 연사인 카멜 부문장은, 가상의 자아가 미치는 효과를 입증한 연구 사례를 소개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프로테우스 효과에 기반해 수행한 아바타 효과 연구(2007)다. 프로테우스 효과는 (타인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에게 다른 유형의 아바타를 주고 이들의 이후 행동을 모니터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주어진 아바타 이미지에 적합한 행동을 오프라인에서 하는 경향을 보였다. 매력적인 이미지의 아바타를 받은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도 매력적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덩치가 큰 아바타를 받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서 위압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

카멜 부문장은 실제 세계와 가상 세계가 융합되며 발생하는 정체성 문제를, 진정성(authenticity)과 접근성(access)이라는 키워드로 요약했다. 그에 따르면 "진정성은 자기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대하는 것으로 남이 보는 것은 중요치 않다."

이어 카멜 부문장은 "몰입형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며 사람들은 자기가 믿거나 바라는 어떤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몰입형 가상 현실 기술로 인해, 사람들은 객관적인 자아보다는 주관적 자아에 더 집중하게 됐고 복수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멜 부문장은 WT에서 개발한 생성형 AI인 밴터AI(Banter AI)를 소개했다. 밴터 AI는 대화 도중 주제를 잘 모르겠거나 상대방 의견에 반대하고 싶을 때 도와 주는 핸드폰용 앱이다. 대화하다 기능을 켜면 대화 내용을 듣고 분석해 맥락에 적절한 표현을 만들어 준다.  

밴터AI
밴터AI에 접속할 수 있는 QR코드. ⓒ분더먼 톰프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