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대로 믿게 된다"… 미디어는 믿음도, 역사도 '주작'할 수 있을까?
"보는대로 믿게 된다"… 미디어는 믿음도, 역사도 '주작'할 수 있을까?
  • 권경은
  • 승인 2023.07.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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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비티 축제 칸 라이언즈(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2023의 가장 큰 변화는 게임 부문이 신설됐다는 점이다.

올해 3월 방한한 필립 토마스(Philip Thomas) 라이언즈 회장은 출품작 중 게임 관련 분야 비중이 커지는 추세이고 게임 부문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아져 '엔터테인먼트 라이언즈 포 게이밍(Entertainment Lions for Gaming)'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토마스 회장에 따르면, 게임은 TV와 영화, 음악을 넘어서는 가장 규모가 큰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사실 게임 광고는 칸에서 그랑프리 등 중요한 상을 꾸준히 수상해 왔다. 따라서 이번 게임 부문 신설은 칸에서 공식적으로 게임 회사가 오늘날 최대 글로벌 기업 중 하나라는 점, 게임 타이틀은 글로벌 브랜드라는 점을 천명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칸 시상식 무대에 갑자기 게임 광고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게임 광고가 그랑프리를 받아 캠페인 영상이 상영됐다. 게임을 하지 않는 나는 당시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캠페인은 엑스박스(Xbox)의 헤일로3(Halo 3) 마케팅 캠페인 '빌리브(Believe)'였다. 맥켄 런던(MCCANN LONDON)이 대행한 이 캠페인은 필름 (Film) 부문 그랑프리 외 3개의 상을 수상했다.

이 광고는 두 가지 면에서 게임 마케팅의 분기점이 됐다. 우선 주류 언론에서 게임 마케팅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당시 엑스박스 이용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일부 청소년들의 놀이라고만 인식되는 상황이었다. 헤일로2까지만 해도 주류 언론에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 캠페인은 주류 언론을 목표로 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다음으로, 헤일로3 빌리브 캠페인은 역사 기록용 매체들의 형태로 게임 세계를 확장했다. 허구적 유니버스를 역사 기록물의 형태를 통해 실재하는 세상과 같은 무게로 그려냈다.

빌리브 캠페인에서는 게임 주인공 '마스터 치프(Master Chief)'를 영웅으로 추앙하고 실제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것처럼 가상의 박물관(Museum of Humanity), 디오라마(Diorama), 참전자 인터뷰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헤일로3 속 전쟁이 현실의 역사인 것처럼 만들었다.

약 15년이 지난 올해, 칸 라이언즈에 신설된 게임 부문에서는 헤일로3 마케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그랑프리를 받았다. 바로 허구의 역사를 구성해 보여준 '클래시 프롬 더 패스트(Clash from the Past)' 캠페인이다. 대행사는 미국 와이든+케네디 포틀랜드(Wieden+Kennedy, Portland). 

'클래시 오브 클랜'은 3억 명의 일일 플레이어와 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바일 게임 중 하나다. '클래시 프롬 더 패스트'는 '클래시 오브 클랜'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와이든+케네디 포틀랜드에 따르면, 이 광고는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에 기반해 착안됐다. 만델라 효과는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기억을 공유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클래시 오브 클랜'은 콘솔, PC 게임에 비해 규모가 작고 '마리오'와 같이 아이코닉한 게임 브랜드도 아니다.

따라서 와이든+케네디 포틀랜드는 '클래시 오브 클랜'의 10주년을 축하하는 대신 가짜 40주년을 기념하면서 '클래시 오브 클랜'의 역사를 '구성(날조?)'해 대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냈다. 1982년부터 '클래시 오브 클랜'이 존재했던 대체 우주를 만들어 팬들을 초대한 것이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이 대체 세상에서는 1980년대 아케이드 플랫폼, 1990년대 레이서 게임, 2000년대 RPG 게임 시대 내내 '클래시 오브 클랜'이 화려하게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은 허구와 현실이 섞이고,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멀티유니버스를 당연시한다. 또한 허구적 유니버스이기에 언제나 리셋하고 다른 유니버스로 갈 수도 있다.

"보는 대로 믿게 된다(Seeing is Believing)"이라는 말이 있다. 미디어를 통해 믿음도 역사도 '주작'될 수 있는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