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라이언즈의 슈퍼스타와 지하의 크리에이터 [박윤진_서울라이터]
칸 라이언즈의 슈퍼스타와 지하의 크리에이터 [박윤진_서울라이터]
  • 박윤진
  • 승인 2023.06.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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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라이언즈 2023] 서울라이터의 칸 라이언즈 탐방기 #3


어느새 칸 라이언즈 3일차.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듯 서울라이터도 칸 3일이면 풍류를 즐길 줄 알게 됐다.

칸 라이언즈에서 매일 세션을 고르는 건 즐거운 숙제이자 축제! 오늘 나홀로 정한 주제는 '슈퍼스타 브랜드 데이!'. 적고 보니 마트 세일을 알리는 전단지 카피 같긴 하지만 유니레버, 맥도날드, 밀러, 코카콜라, 구글과 같은 슈퍼스타 브랜드들의 세션이 몰려 있는 오늘이기에 신나게 '슈스' 브랜드 대잔치를 즐겨 보기로 마음 먹었다.

아침을 연 세션은 '리얼 뷰티' 캠페인으로 유명한 유니레버(Unilever) 였다. 메인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발 3층에 위치한 2000석 규모의 대형관 뤼미에르 씨어터에서였다. 도브는 20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온 리얼 뷰티 캠페인을 집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션의 제목도 'The Real Beauty of Long-Lasting Brands(오래 지속하는 브랜드의 진정한 아름다움)'였다.

유니레버 최고 디지털&커머스 책임자 코니 브람스(Conny Braams). ⓒCannes Lions

이날의 세션엔 최고 디지털&커머스 책임자 코니 브람스(Conny Braams)와 최고 마케팅 책임자 알레산드로 맨프레디(Alessandro Manfredi)가 참여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삶에서 브랜드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연구결과에 주목하며 사람들이 더는 자신이 소비하는 제품이 어떤 브랜드인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따라서 1인 가구의 증가, 인구 감소, 중고의류시장과 게임산업의 성장 등,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읽고 브랜드가 그 안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다음 세션은 자연광이 풍부하게 쏟아지는 3층 테라스 스테이지에서 열렸다. 세션의 주제는 'Building a Culture of Creative Effectiveness(창의적 효율성의 문화 구축)'으로 맥도날드의 최고 마케팅&소비자 경험 책임자인 타리크 하산(Tariq Hassan)과 와이든+케네디(Wieden+Kennedy)의 ECD 마르퀴스 가트렐(Marques Gartrell)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마르퀴스 가트렐(Marques Gartrell) 와이든+케네디 글로벌 ECD. ⓒCannes Lions

맥도날드는 '팬 트루쓰(Fan Truths)'라는 개념을 크리에이티브 전략의 중심에 두고 여러 캠페인을 통해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작용했는지 결과를 공유했다. '팬 트루쓰'는 맥도날드가 진행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며 이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된다고 한다.

특히 맥도날드는 와이든 앤 캐네디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기업이 아닌 팬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도의 결과 '맥도날드가 다시 쿨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됐고, 브랜딩은 물론 퍼포먼스까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았다. 브랜드냐 퍼포먼스냐, 두 가지를 두고 고민에 빠지는 마케터들에게 맥도날드는 브랜딩과 퍼포먼스가 양립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줬다.

다음은, 1000여 석 규모의 대형관 드뷔시 씨어터로 이동했다. 두 명의 연사들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맥주 한 캔씩 들이키며 위트 넘치는 여러 캠페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 세션은 밀러 라이트의 'Pouring into Work That Works(되는 일에 쏟아 부어라)', 즐겁게 세션을 듣던 중 서둘러 지하의 'Insights Stage'로 향했다.

필름 크래프트 라이언즈를 심사한 심사위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미니 세션 'Inside The Jury Room'이 곧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이 곳에는 그랑프리를 비롯해 여러 번 칸에서 수상한 킴 게릭(Kim Gehrig)감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킴 게릭 감독은 존 루이스의 'Man on the Moon', 애플의 'The Greatest' 등 수많은 화제작을 연출한 세계적인 감독이자, 꼭 한번 만나고 싶은 감독이었다. 

서둘러 안내된 공간에 도착했다. 주변이 오픈된 공간에 한 단짜리 작은 무대가 있고 벽에는 작은 모니터가 걸려있는 소박한 분위기였다. 행사의 시작을 알리자 박수에 맞춰 심사위원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자신들이 담당했던 필름 크래프트 부문의 수상작을 함께 감상하며 수상작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을 듣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수상작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심사위원들의 태도였다. 평가하는 권위를 부여받은 자 특유의 고압적인 태도가 전혀 없었다. 심사위원장이자 제작자, 시상자이자 수상자였던 킴 게릭 감독을 비롯한 두 명의 프로듀서들은 출품작들의 사정에 자신의 일처럼 공감했다. 예산의 부족함이나 일정의 촉박함 등 실질적인 제작의 어려움을 공유하며 긴 시간 숙고 끝에 8편의 골드와 그랑프리를 선정했음을 밝혔다.

그랑프리를 받은 켄드릭 라마의 뮤직비디오 'We Cry Together'에 관해서는 이것은 '작품'이며, 본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큰 영감을 받았다는 소감을 더했다. 그랑프리를 몇 차례나 수상한 명망있는 감독에게서 들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겸손한 발언이었다.

'Inside The Jury Room' 현장. ⓒ서울라이터
'Inside The Jury Room' 현장. ⓒ서울라이터

소박하지만 따뜻했던 세션이 끝나고 주변을 둘러봤다. 다양한 분야의 출품작들이 지하 공간 가득 전시돼 있었다. 문득 광고제 출품을 준비할 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캠페인을 잘 전달하기 위해 긴 설명을 달고, 몇 번이곤 고쳤던 기억. 퍼포먼스 관련 수치가 잘못된건 아닐까 반복해서 확인하고, 행여 마감을 놓치진 않을까, 빠진 스태프 리스트가 있는 건 아닐까 가슴 졸였던 기억들. 그런 간절함과 두근두근한 마음들이 전 세계에서 날아와 이 곳 칸 라이언즈 지하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시각에도 메인 행사장의 메인 무대에서는 넉넉한 예산으로 무장한 슈퍼 브랜드들의 화려한 세션이 이어지고 있었다. 10년 전 바뀐 칸 라이언즈의 공식 명칭은 '칸 라이언즈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오브 크리에이티비티(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다.

행사의 뿌리는 광고지만, 광고가 크리에이티비티의 전부를 대표하진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다만 크고 화려한 것들 아래 작지만 빛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가치와 의미를 살피는 일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만드는 사람의 지난한 여정을 알기에 그 길을 통과해 여기 칸에 모인 작고 빛나는 것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내일은 출품작들을 더 찬찬히 살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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