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환] 은근한 매력의 장수 콘텐츠, 시청자는 '적당한 익숙함'을 원한다
[정일환] 은근한 매력의 장수 콘텐츠, 시청자는 '적당한 익숙함'을 원한다
  • 김수경
  • 승인 2021.04.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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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과 참신함의 최적 비율을 찾아낸 콘텐츠가 승리"
"적당한 익숙함과 적당한 참신함이 중요"
ⓒ코바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촉발한 4차산업혁명은 고속 순항 중이다.

기술은 빠르게 변할 것이고 변화를 강요할 것이다. 트렌드는 채 3개월을 넘지 않는다. 기존의 세계관 또는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대처법은 아닐 것이다. 새로움이 그 어떤 가치보다 우월한 지위를 얻은 세상이다.

경영자들은 참신함만 갖춘다면 어떤 비즈니스에서 남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그친다. 빨리 새로운 것 만들어내라고. 그런데 진짜 그럴까. 대중의 정서도 빠른 변화를 무조건 선호할까. 참신하기만 하면 소비자는 마음도 열고 지갑도 열까.

최적 독특성과 대중의 선호도
이와 관련해 와튼 스쿨의 조나 버거 교수는 익숙한 것과 참신한 것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를 연구한 적이 있다.

먼저 익숙함이다. '애착이론'에 의하면 자주 보고 익숙해지면 애정이 생겨난다. 자동차의 경우 다른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기존 모델과 비슷한 디자인의 선호도가 더 높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사람은 낯선 사람보다는 익숙한 친구와 만나는 걸 선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신함은 어떨까. '쿨리지 효과'가 이를 잘 설명한다. 미국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 내외가 닭 사육농장을 방문했는데 영부인이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닭이 짝짓기한다는 얘기를 듣고 대통령에게 이를 전하라고 했다. 대통령은 이 이야기를 듣고 "수컷 닭이 매번 같은 암컷과 짝짓기를 하느냐"고 물었고 농장 주인이 "다른 암컷과 한다"라고 답하자 이를 영부인에게 전하라고 한 데서 쿨리지 효과가 유래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조합해 조나 버거 교수는 '최적 독특성'이란 개념으로 소비자의 선호도를 설명했다. 적절한 비율로 익숙함과 참신함이 배합된 상품이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만족을 준다는 것이다.

버거 교수는 자녀 이름에 관한 연구를 근거로 최적 독특성을 설명했다. 미국의 자녀 이름 데이터를 분석하면 태풍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보았던 해에 태어난 아이들 사이에 유독 K로 시작하는 이름이 늘었다고 한다. 킬리는 25%, 케일린은 55%나 증가했다. 대신 카트리나라는 이름은 40% 줄었다.

즉, 사람들은 설령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진 카트리나라는 이름과 유사성이 있으면서도 차이점을 가진 이름을 선택했다는 것이다(재밌지 않은가). 또 다른 실험에서도 너무 익숙한 이름이나 낯선 이름보다는 적당히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이름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이러한 연구는 뜻밖의 결과일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상식과 닿아 있다. 어떤 것이 더 편한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즉 대중의 선호도는 익숙함과 참신성의 조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너무 익숙한 것,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는 적당히 익숙하면서도 일정 부분 새로운 요소를 가진 것을 선호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익숙함과 참신함의 최적 비율을 찾아낸 콘텐츠가 승리할 수 있다. 온전히 익숙한 것이, 무조건 참신한 것이 시청자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 사례는 KBS2의 장수 예능에서 찾을 수 있다.

KBS2 장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코바코

새로운 익숙함
장수 프로그램들은 사실 색다른 스토리텔링이나 재미 요소를 가져오기보다는 본래 프로그램이 갖고 있던 자산들을 기본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정글의 법칙'은 정글 서바이벌의 연속이며 '런닝맨'은 게임과 캐릭터 예능을 게스트만 바꿔가며 해오고 있다.

물론 음악 예능은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불후의 명곡'이나 '복면가왕' 역시 출연자만 바뀌면서 진행 방식은 같은 플롯을 갖고 있다. '1박2일'도 마찬가지다. 시즌 4로 이어진 1박2일은 익숙한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온전히 새로운 것도 없고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을 것이다.

분명히 어디론가 떠날 것이다. 겨울이면 '혹한기 캠프', 여름이면 '혹서기 야영'이란 명목으로 산골 아니면 바닷가로 찾아갈 것이고 그 속에서 식사와 잠자리를 놓고 복불복 게임을 펼치게 될 것이다. 실패하면 끼니를 거르거나 계곡 입수 벌칙을 받아야 하고 성공하면 육즙이 흐르는 육식과 따스한 캠핑카의 은혜를 입게 될 것이다. 허허벌판에 복불복 게임으로 얻은 재료들로 집을 짓는 모습도 반복이다.

촘촘하게 엮인 캐릭터의 케미스트리도 새로운 듯 익숙하다. 맏형 연정훈은 드라마 속의 잘나가는 실장님이 아니라 나이 들어 총기 떨어진 짠한 아재다. 그러면서도 든든한 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문세윤과 딘딘은 예능의 전형적인 플롯을 만들어 간다. 딘딘은 귀엽지만 얄미운 깐족 캐릭터를 거의 완성했고 문세윤은 딘딘과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웃음 포인트를 귀신같이 찾아 끄집어낸다. 문세윤은 먹방도 최적화되어있다. 육즙을 흘리며 삼겹살을 먹는 문세윤의 모습은 '맛있는 녀석들'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김선호는 아직은 좀 덜 뻔뻔하지만 가끔은 승부욕을 드러내며 조금씩 더 녹아드는 모습을 보인다. 라비는 신세대다운 솔직함과 개성 강한 면모가 그의 캐릭터다. 그리고 '노송' 김종민은 여전히 김종민스럽다. 이처럼 시즌마다 출연자는 달라지지만, 캐릭터 구성은 매 시즌 유사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빠져든다. 시청자들의 시청목적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1박2일을 보는 시청자들은 온전한 새로움을 찾기 위해 채널을 돌린 게 아니다. 적당한 익숙함과 적당한 참신함을 위해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빠른 변화에 적응하느라 힘든데 TV만큼은 그냥 소파에 누워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적당히 웃고 적당히 즐기고 싶지 않을까. 그런 바람의 정확한 지점에 1박2일이 서 있다.

은근한 매력의 장수콘텐츠
예상대로의 뻔함이 참으로 편할 때가 있다. 아니 필요할 때가 있다. 비록 '지겹다', '반복이다', '자기 복제다'라는 비난을 듣지만 모든 콘텐츠가 새로움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TV를 보며 휴식 시간을 보내는 것이 대다수 예능 시청자들의 목적이라 믿는다. 적당히 새롭고 적당히 익숙한 그 경계에 있는 콘텐츠, 최적 독특성을 보유한 프로그램이면 충분하다.

아마 이번 주의 '1박2일'은 작년의, 또 재작년의 일요일 어느 밤과 비슷할 것이다. 동시에 또 새로울 것이다. 분명 일요일 밤의 편안함에 최적화된 콘텐츠다. 그것이 오랜 기간 일요일 저녁을 지켜온 최적 독특성을 가진 1박2일의 저력이다. 우리는 그 기대로 일요일 저녁이면 '1박2일'을 기다릴 것이다. [정일환 코바코 영업1국 마케팅인사이트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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