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비밀 연구소 'C랩', TV 포장재에 '점' 찍었더니 생긴 일
삼성전자 비밀 연구소 'C랩', TV 포장재에 '점' 찍었더니 생긴 일
  • 김수경
  • 승인 2020.05.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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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지는 포장재 박스, 손쉽게 접어 만드는 생활 가구로 탈바꿈
"친환경 제품, 단순 결과물보다 모든 과정이 더 중요"
(좌측부터)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윤대희, 황수현, 손성도 프로. ⓒ정상윤 기자
(좌측부터)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윤대희, 황수현, 손성도 프로. ⓒ정상윤 기자

TV를 포장할 때 쓰는 커다란 박스는 배송 직후 대부분 곧바로 폐기된다. 쉽게 버려지는 포장박스에 '점(dot)'을 찍자 곧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소비자들이 TV 포장박스를 접어 고양이집과 탁자, 선반 등 소형 가구를 만들어쓰기 시작한 것이다.

'점'이라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삼성전자의 '에코 패키지(Eco package)'는 환경을 보호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디자인으로 폐박스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냈다.

뉴데일리경제 브랜드브리프팀은 '에코 패키지' 프로젝트를 담당한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황수현·윤대희·손성도 프로를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만났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비밀연구소로 불리는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C랩(C-Lab)을 거쳐, 1년 간 의기투합해 '에코 패키지'를 완성했다.

황수현 프로는 "미래 소비층으로 떠오른 MZ(밀레니얼·Z세대) 세대들은 자기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하고 그 신념을 지지해주는 브랜드를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특히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에코 패키지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이 에코 패키지를 직접 활용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포장재의 내구성을 유지하면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도트 패턴을 떠올렸다"고 밝혔다. 

'에코 패키지'는 기존 TV 포장재에 모눈종이 형태로 수많은 점을 찍어 디자인됐다. 누구나 박스를 쉽게 재단하고 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윤대희 프로는 "어떤 가구를 제공할지, 얼마나 쉽게 만들지, 얼마나 견고한지,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다"며 "멋지고 예쁜 가구를 디자인하면 만들기가 어렵고, 좀 더 쉽게 만들면 완성된 모습이 예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손성도 프로는 "어느 방향성이 옳은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3명이 모두 OK할 때까지 매일 토론을 이어갔다"며 "일반적인 기업 조직문화와 달리 C랩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마음껏 만들어내는 곳이다보니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각자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었던 게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좌측부터)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황수현, 윤대희, 손성도 프로. ⓒ정상윤 기자
(좌측부터)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황수현, 윤대희, 손성도 프로. ⓒ정상윤 기자

그렇게 탄생한 '에코 패키지'는 버려지는 폐박스를 리모컨 수납함, 잡지꽂이, 탁자, 고양이 집, 캣터널 등으로 탈바꿈시켰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조립한 가구를 SNS에 올리는가 하면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며 '에코 패키지'의 탄생을 반겼다.

에코 패키지는 인쇄 과정에서 점만 찍힐 뿐 그 외의 추가 공정이나 별도의 기계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때문에 추가 제작 비용이나 추가적인 환경 오염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제작 매뉴얼은 종이 대신 QR코드를 스캔하면 볼 수 있는 웹도면으로 대체했다. 평균 40분~3시간 정도면 누구나 원하는 모양으로 손 쉽게 박스를 잘라내 가구를 조립할 수 있다. 가구 조립시 별도의 접착제나 테이프가 필요없다.

황수현 프로는 "친환경 디자인은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디자인하는게 아니라, 모든 공정에서 환경 오염이 추가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며 "친환경 제품은 단순 결과물보다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겉으로만 친환경 이미지를 갖기 위해 관련 활동을 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진짜 친환경 제품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설명이다.

황 프로는 "꼭 C랩이나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이 아니더라도 삼성전자 내 모든 부서에서는 환경을 고려해 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깔려있다"며 "일례로 디자인팀에서는 단순히 외견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소재, 친환경적인 소재를 리서치하고 제품에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기회로 개인적으로도 친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에코 패키지' 팀은 가정 쓰레기 분리배출을 꼼꼼히 따져서 하고 1회용 대신 실리콘 빨대를 사용하는 등 일상 속에서도 친환경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에코 패키지'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혁신상을 받으며 해외에서 먼저 주목 받았다.

손성도 프로는 "해외 기업 관계자들의 관심이 높았는데, 현지 부스에서 일본 관계자들이 에코 패키지를 보고 '스고이(すごい, 대단하다)'를 외치는 것을 보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좌측부터)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황수현, 윤대희, 손성도 프로. ⓒ정상윤 기자
(좌측부터)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디자인팀 황수현, 윤대희, 손성도 프로. ⓒ정상윤 기자

'에코 패키지' 프로젝트 팀은 다음달 말까지 활동을 마무리하고 원래 소속으로 되돌아가 일반 업무를 맡게 될 예정이다.

윤대희 프로는 "사람들이 에코 패키지를 만들고 경험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며 "현업으로 돌아가면 업무 목표나 프로젝트는 달라지겠지만 앞으로도 사람들의 손에 닿는 설렘을 전달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손성도 프로는 "현업으로 되돌아가면 새로운 소비자 경험 발굴과 제품 개발 등을 담당하게 된다"며 "최신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사용성 측면에 있어서는 나이드신 분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황수현 프로는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며 "에코 패키지 프로젝트도 어떻게 보면 미래를 미리 생각하고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사실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제품이나 생활 속 작은 부분들이 있다"며 "이를 먼저 발견하고 개선해서 더 나은 소비자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는 현재 '더 프레임(The Frame)', '더 세리프(The Serif)', '더 세로(The Sero)' 등 라이프스타일 TV 제품 포장재에만 적용된 '에코 패키지' 디자인을 전제품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추후 '에코 패키지'는 더욱 다양한 제품 속 유용한 디자인으로 소비자들과 만나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에코패키지로 만든 고양이 집. ⓒ삼성전자
삼성전자 에코패키지로 만든 고양이 집. ⓒ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