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⑥손원혁 오리콤 ECD "크리에이티브도 지적재산권 인정돼야"
[인터뷰] ⑥손원혁 오리콤 ECD "크리에이티브도 지적재산권 인정돼야"
  • 김새미 기자
  • 승인 2018.06.15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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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제작 아이디어 가치 보상 받으려면 제도적 개선 필요
광고주-대행사 간 장기적 파트너십 형성하기 힘들어져
▲손원혁 오리콤 ECD(제작1본부장) ⓒ이종현 기자
▲손원혁 오리콤 ECD(제작1본부장) ⓒ이종현 기자

"머리로 생산하는 아이디어도 사회적으로 보장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지난 8일 오리콤 본사에서 만난 손원혁 ECD(제작1본부장, 48세)는 이렇게 말했다. 크리에이티브에도 일종의 저작권이 적용됐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보통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 입문하는 CD들과 달리 손 ECD는 디자이너로서 1995년 광고계에 첫 발을 디뎠다.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한 '미대 오빠'였던 그는 순수예술보다는 광고가 끌렸다고 한다. 지난 2003년 3월 오리콤에 입사해 현재 크리에이티브 제작1본부장을 맡고 있다.

◆ "광고 제작 아이디어 가치를 보상 받고 싶어… 제도적 개선 필요"

손 ECD는 "휴지화되는 아이디어들이 아깝다"며 "50개의 아이디어 중 하나만 실제로 광고화가 되고 나머지는 사장된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과거에 했던 작업이나 아이디어가 담긴 외장하드를 보며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왜 인정을 못 받았나' 하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지적 재산권을 인정 받는 날이 왔으면 하는 게 손 ECD의 바람이다. 그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음악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약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다 보호가 돼서 음악 한 곡에 쓰이는 비용이 몇천만원부터 심지어 억 단위를 넘기기도 한다"며 "저희가 하는 일에도 그런 보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고에서도 저작권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손 ECD는 "디지털화 등 광고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저희가 풀어갈 숙제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광고 분야의 일이 지적 재산을 인정 받는 분야가 돼야 하는데 (광고) 제작 쪽에서는 아이디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보상을 못 받고 서비스업을 하는 것 같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사람들이 광고회사가 뭘 하는 곳인지, 어떻게 힘든지를 잘 모르니까 우리가 보호 받기 힘든 것 같다"며 "그런 부분이 제도적으로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손 ECD는 광고업계에서 많이 쓰이는 '크리에이티브'라는 용어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저는 매체, 기획 등 (광고의 모든 과정이) 다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크리에이티브한 전략이 크리에이티브한 제작물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쪽은 크리에이티브해야 하고 저 쪽은 스마트해야 한다는 이분법적인 게 요즘은 잘 안 맞는 것 같다"며 "크리에이티브의 경계가 많이 무너져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드테크에 대한 관심도 드러냈다. 손 ECD는 "물리적 시간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지만 해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애드테크"라며 "세상에 처음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다"고 언급했다. 이어 "원천 기술 하나를 특허처럼 만들어서 보호 받고 싶다"는 소망도 드러냈다.

▲손원혁 오리콤 ECD(제작1본부장) ⓒ이종현 기자
▲손원혁 오리콤 ECD(제작1본부장) ⓒ이종현 기자

◆ 장기적인 파트너십 형성이 좋은 광고 배출해

손 ECD는 두산그룹의 '사람이 미래다' 캠페인과 '내일을 준비합니다' 캠페인, 한화그룹의 '나는 불꽃이다' 캠페인 등 유명한 기업 PR 광고를 다수 제작했다.

기업 PR 광고를 제작하는 데 있어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는 "기업PR은 당장의 반응이나 결과가 안 나오는 것들도 많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제일 힘들다"며 "기업의 철학을 얘기하는 게 많기 때문에 의도를 잘 해석해서 가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기업 PR 광고의 경우) 자기 자랑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게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라며 "메시지를 줄 때 교훈을 주거나 교육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공익광고 같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공익광고스럽다는 건 대중들이 들었을 때 유익한 느낌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손 ECD는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캠페인을 5년 이상 하는 경우가 상당히 드물다"며 "옛날에는 큰 회사들이 광고회사와 신뢰를 갖고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해 결과가 굉장히 좋은 광고들도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는 "요즘엔 1년만 지나면 공정거래 이슈 때문에 경쟁 PT를 통해 (광고대행사를) 바꾼다"며 "공정거래하는 것은 좋은데 장기적인 파트너십 형성에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해외와 달리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축적하는 광고주 기업과 광고대행사 관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건 광고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기도 하다.

손 ECD는 "(비계열사) 광고주와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하기 힘들다"며 "오리콤 같은 경우는 인하우스 광고대행사이지만 내부 광고주 의존도가 높지 않은 편"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오리콤은 인하우스 광고대행사 중 내부거래 비중이 지난해 22.2%(223억원)로 50~60%대인 타사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손 ECD는 "오리콤은 구성원들이 퍼포먼스를 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회사"라며 "사람에 대해 함부로 대하는 회사는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올해 15년 근속상을 받은 손 ECD는 "오리콤은 다산의 상징"이라며 "출산율이 이렇게 높은 회사가 없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좀 더 오래 회사 다니면서 끝까지 일해보고 싶다"며 "광고업계가 제도적으로 개선돼서 (크리에이티브의) 지적 재산권이 지켜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면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