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나이키처럼… 광고주와 대행사, '갑을'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윈윈
애플·나이키처럼… 광고주와 대행사, '갑을'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윈윈
  • 김수경
  • 승인 2023.04.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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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식품-제일기획, 1974년부터 49년째 국내 최장기 파트너십 유지
광고주 "브랜드 이해도 높아 신뢰", 대행사 "매너리즘 경계하고 다양한 아이디어 제안해야"
"장기 파트너십은 비즈니스 성공에 대한 증명… 매년 새로운 배움과 교훈 얻어"
"삼성=제일기획, 현대차=이노션 공식 깨져야 더 크리에이티브한 광고 생태계 구축"
나이키의 공동 창립자 필 나이트(Phil Knight)와 나이키 광고대행사 와이든+케네디의 공동 창립자 故 댄 와이든(Dan Wieden). ⓒDesign Indaba 유튜브 캡처

전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브랜드로 손꼽히는 애플(Apple)과 나이키(Nike)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매년 천문학적인 광고·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으며 독보적인 브랜드 세계관을 확립한 이들의 뒤엔 위대한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의 힘을 불어넣어주는 든든한 파트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이키와 와이든+케네디(Wieden+Kennedy)는 지난 1982년부터, 애플과 TBWA(전 Chiat/Day)는 1984년부터 파트너십을 맺고 약 40년 간 돈독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와이든+케네디는 나이키의 대표 슬로건인 'Just Do It(저스트 두 잇)' 캠페인을, TBWA는 애플의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 캠페인을 통해 글로벌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광고주와 대행사 간 '갑을' 관계가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전략적 파트너로서 브랜드를 함께 구축해가고 있다.

물론 국내에도 삼성과 제일기획, 현대자동차와 이노션, LG와 HS애드, 롯데와 대홍기획, 두산과 오리콤 등 장기적인 대행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대기업 계열 인하우스(inhouse, 내부) 광고대행사로, 일반적인 광고주-대행사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브랜드브리프 취재 결과, 현재까지 국내에서 최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광고주와 대행사는 동서식품과 제일기획이다.

지난 1974년 '맥스웰하우스' 광고를 시작으로 인연을 맺은 제일기획은 49년째 동서식품의 광고를 대행하며 '맥심 화이트골드', '맥심 모카골드', '맥심 T.O.P', '카누' 등 성공적인 브랜드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동서식품은 광고대행사뿐만 아니라 공유, 김연아, 안성기, 원빈, 이나영(가나다 순) 등 광고 모델과도 오랜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제일기획과 오래도록 인연을 맺고 있는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 TV 광고나 팝업스토어 이벤트, 프로모션 등 원하는 결과물을 잘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축적된 경험에 의한 시너지 효과도 뚜렷하다"고 밝혔다.

제일기획은 동서식품 외에도 귀뚜라미보일러(1993년~), KT(1999년~), 하이모(1999년~), 신한금융지주(2007년~)와도 장기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에이스침대와 오리콤도 1993년부터 30년 간 끈끈한 파트너 관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에이스침대가 1990년대 초 광고에서 선보인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광고 카피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에는 '좋은 잠' 캠페인으로 새로운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리콤 관계자는 앞선 브랜드브리프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광고 제작을 대행해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파트너로서 신뢰를 갖고 제품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며 "에이스침대도 오리콤을 광고 대행사가 아닌 파트너로서 존중하면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모델을 선정할 때 에이스침대 대표가 직접 신입사원부터 고위 임원까지 다양한 부서의 의견을 하나 하나 경청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이노레드 단체 사진. ⓒ이노레드
이노레드 단체 사진. ⓒ이노레드

독립 광고대행사인 이노레드(INNORED)는 한국존슨앤드존슨과 15년째(2007년~) 협력하고 있다. 이노레드 창업 초기부터 맺은 클라이언트와의 인연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 이 외에도 이노레드는 이니스프리(2012년~), 노스페이스(2013년~), 빙그레 바나나맛우유(2014년~) 등 탄탄한 장기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 성장을 이끌어내며 국내를 대표하는 중견 광고회사로 자리잡았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비티 축제인 칸 라이언즈(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에서 매일유업의 '우유안부(Greeting Milk)' 캠페인으로 브랜드 익스피리언스&액티베이션(Brand Experience&Activation) 부문 실버 라이언, PR·컬추럴 인사이트(PR·Cultural Insight) 브론즈 라이언을 수상했으며, 2022년 아시아 에이전시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박현우 이노레드 대표는 "클라이언트와 에이전시의 장기간 파트너십이 이어진다는 것은 광고회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증명"이라며 "클라이언트가 일을 계속 맡기는 이유는 심플하다. 우리의 서비스를 통해 비즈니스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파트너십의 성공이고, 만족의 표현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브랜딩은 보통 단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며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경험은 웬만한 광고회사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에 매년 진행할 때마다 새로운 배움과 교훈이 있다"고 덧붙였다. 

우아한형제들이 2019년 선보인 HS애드 헌정 광고. ⓒHS애드

브랜드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한 광고주-대행사 간 파트너십 사례도 주목할 만 한다.

HS애드는 2014년 9월, 우아한형제들이 운영하는 브랜드 '배달의민족'의 첫 TV 광고 캠페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다. HS애드는 '우리 민족이었어' 캠페인으로 '배달의민족'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으며, 이후 '배달의민족'은 국내 1위 배달앱 브랜드로 성장했다. 우아한형제들은 HS애드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광고대행사를 위한 헌정 광고를 집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오래 호흡을 맞춰오면서 배달의민족의 니즈를 잘 파악해줬고 이는 늘 좋은 광고,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며 "그 덕분에 오랜시간을 함께 해 올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서비스플랜코리아는 국내 스타트업인 닷 인코퍼레이션(DOT)을 글로벌 테크 회사로 발돋움하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서비스플랜코리아는 2015년부터 닷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먼저 협업을 제안해 광고·마케팅을 대행하게 됐고, 이후 닷은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용 점자 스마트 기기로 칸 라이언즈 최고상인 '티타늄'을 비롯해 각종 글로벌 광고·디자인 대회에서 수상하며 성공적인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강지현 서비스플랜코리아 대표는 닷의 티타늄 수상 당시 "기술에는 자신 있었지만 스토리텔링이 막막했던 닷의 고민을 파악하고 서비스플랜그룹이 가진 크리에이티비티와 네트워크, 인프라, 물적‧인적 자원을 지원했다"며 "그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 닷을 위한 큰 물줄기를 만든 것 같다"고 평했다.

칸 라이언즈 2022에서 닷의 '닷패드' 캠페인으로 티타늄 라이언즈를 수상한 서비스플랜 독일 뮌헨과 (오른쪽에서 세번째)강지현 서비스플랜코리아 대표. ⓒ프랑스 칸 = 이기륭 기자

장기 파트너십을 성공적으로 유지해오고 있는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상호간의 신뢰가 커지면 광고주의 요청에 의한 일반적인 오더메이드(order-made)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광고주 맞춤형 아이디어를 에이전시가 자발적으로 개발해 제안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며 "단, 특정 클라이언트를 오랜 기간 대행할 때 '잡은 물고기'라는 착각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그 회사와 업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별화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조창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겸임교수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간 장기적 파트너십은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경영적인 안정감을 주고, 크리에이티브 측면에서는 높은 이해도와 신뢰도를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대행사들은 안전하지만 뻔한 제안을 계속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하며, 규모가 작은 광고회사의 경우 한 클라이언트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공백이 생길 경우 회사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고 대행 계약을 따기 위한 소모적인 경쟁 프리젠테이션(PT)이 반복되고, 대행사가 바뀔때마다 브랜딩 전략도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잦은 국내 광고 시장에서 장기 파트너십은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윈윈(win-win) 모델로 꼽힌다. 특히 대기업과 인하우스 대행사 간 내부 거래가 아닌, 크리에이티비티와 솔루션을 중심으로 한 경제논리에 의한 파트너십이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깊다.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해외에서는 삼성과 현대차 광고를 인하우스 대행사 외에도 다양한 광고대행사들이 대행하고 있다. 이해관계를 떠나 더 훌륭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대행사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국내에서도 삼성은 제일기획, 현대차는 이노션과 같은 인하우스 체제의 낡은 공식이 깨지게 된다면 대행사들의 진짜 능력이 드러나게 되고, 이를 통해 더욱 경쟁력있고 크리에이티브한 광고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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