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 최고의 마케팅?"… 폭스바겐 '만우절' 장난이 브랜드에 미친 영향
"거짓말쟁이? 최고의 마케팅?"… 폭스바겐 '만우절' 장난이 브랜드에 미친 영향
  • 김수경
  • 승인 2021.04.02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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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전기차에 초점 맞춘 '볼츠바겐'으로 사명 변경 발표… 만우절 장난으로 드러나 뭇매
언론까지 속인 선 넘은 장난에 질타 이어져… 과거 '디젤게이트' 재조명되며 신뢰도 타격
폭스바겐의 전기차 사업 의지 전세계에 확실히 알리며 절반의 성공 거둬
역대 최다 관심 모은 만우절 마케팅 사례로 남을 전망
폭스바겐의 만우절 장난. ⓒ폭스바겐 트위터

"새로운 볼츠바겐(Voltswagen)을 소개합니다."

독일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Volkswagen)이 지난 29일 공식 트위터에 올린 사명 변경 소식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폭스바겐은 전기차에 초점을 맞춰 전압의 단위를 의미하는 'Volt'를 새로운 사명에 포함시킴으로써 회사의 새로운 방향성을 강조했다. 단순히 브랜드 이름을 바꾼 것을 넘어, 회사의 미래 사업 방향성에 대한 굳은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 소식은 온라인 뉴스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폭스바겐이 전기차 사업에 집중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이날 뉴욕 증시에서 폭스바겐의 주가는 장중 한때 12%까지 치솟았다.

ⓒ폭스바겐 트위터

그러나 폭스바겐의 사명 변경은 허무하게도 4월 1일 만우절 농담으로 밝혀졌다. 언론과 소비자들은 분노했고, 폭스바겐은 주가조작 혐의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를 받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선 넘은 장난이었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폭스바겐은 공식 트위터에 전기 콘센트 이미지와 함께 "우리의 만우절 장난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 전기차 사업만큼이나 우리 브랜드의 헤리티지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며 "볼츠바겐이든 폭스바겐이든 사람들이 우리의 전기차 사업과 전기차 ID4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만큼은 좋은 일"이라는 글을 올렸다.

폭스바겐은 선 넘은 만우절 농담에 대한 사과 대신, 오히려 전기차 사업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하며 농담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했다. 폭스바겐이 이번 사태로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2일 글로벌 광고 전문 매체 애드에이지(Adage)는 폭스바겐의 만우절 농담이 브랜드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애드에이지에 따르면 폭스바겐의 만우절 장난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어 모은 최고의 마케팅이라는 찬사와, 많은 사람들을 속인 최악의 실수라는 악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폭스바겐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광고대행사 요하네스 레오나르도(Johannes Leonardo)가 기획한 폭스바겐의 만우절 농담에는 강력한 마케팅 목표가 담겨있다. 비록 '볼츠바겐'은 가짜였지만, 폭스바겐의 전기차 사업에 대한 의지만큼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이번 만우절 농담을 위해 작성된 공식 홈페이지 내 보도자료에는 스캇 키오(Scott Keogh) 북미 폭스바겐 CEO를 포함한 고위 임원진들의 성명까지 포함 돼 있어 사람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폭스바겐은 만우절인 4월 1일이 아닌, 며칠 앞선 3월 29일에 사명 변경 소식을 전해 더욱 많은 사람들을 쉽게 속일 수 있었다.

또 사명 변경에 대해 '혹시 만우절 장난이냐'고 묻는 일부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라고 답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폭스바겐이 '볼츠바겐'에 대한 상표 등록을 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몇몇 취재진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은 귀여운 장난"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폭스바겐의 농담에 속아 사명 변경 내용을 실제로 보도했던 AP(Associated Press)가 후속 기사에서 폭스바겐을 맹비난하면서 여론의 집중적인 질타가 시작됐다.

AP 측은 지난 2015년 폭스바겐이 디젤 자동차 배기가스 검출량을 조작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던 '디젤 게이트(Diesel Gate)'를 언급하며 "폭스바겐이 이번엔 사명 변경 건으로 또 다시 거짓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잘못된 회사 정보를 퍼뜨려 미국 증권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등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전세계적으로 사명 변경이 크게 화제를 모으자 폭스바겐 측은 성명을 통해 "SNS 상의 긍정적인 반응은 이번 캠페인이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동시에 일부 소비자들은 화가 났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혼란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폭스바겐 ID4 전기차.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 ID4 전기차.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폭스바겐의 이번 만우절 장난은 대형 TV 광고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가 예전처럼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끌기 어려워진 시대에 마케터들이 주목해야 할 새로운 사례가 됐다. 폭스바겐뿐만 아니라 많은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다소 과감한 마케팅을 진행하며 브랜드 주목도를 높이고 있지만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 버거킹이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진행한 '여성은 부엌에 있어야 한다(Women belongs in the kitchen)' 캠페인은 도발적인 문구를 내세워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데는 성공했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잘못된 언어 선택으로 인해 뭇매를 맞았다.

광고대행사 아노말리(Anomaly)의 제이슨 디랜드(Jason DeLand) 파트너는 "브랜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제품, 소비자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같은 기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야한다"며 "단지 관심을 끌기 위해 브랜드 이름으로 장난을 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18년까지 9년 동안 폭스바겐 미국의 광고를 대행해 온 광고대행사 도이치(Deutsch)의 마이크 쉘던(Mike Sheldon) 전 CEO는 "폭스바겐이 만우절 농담을 너무 일찍 하는 등 여러 단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며 "만우절 장난은 4월 1일에만 허용될 뿐, 나흘 전에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폭스바겐의 장난은 재밌지도 않았다"는 의견을 전했다.

폭스바겐의 이번 만우절 장난이 브랜드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있다. 폭스바겐은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 망가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만우절 장난으로 인해 또 다시 신뢰에 해를 끼치게 됐다는 것이다.

브랜딩 에이전시 MBLM의 마리오 나타렐리(Mario Natarelli) 매니징 파트너는 "폭스바겐과 같은 대형 기업은 이런 식으로 장난치지 않는다"며 "브랜드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며 많은 시험을 견뎌야한다. 그걸로 장난을 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높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기록하고 널리 공유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것은 잘못된 방식"이라고 밝혔다.

폭스바겐 로고. ⓒ폭스바겐

그러나 이번 만우절 농담이 폭스바겐 브랜드에 장기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거센 비난과는 달리,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소비자들은 이를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인 스트래터지스(Doyne Strategies)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캐런 도인(Karen Doyne)은 "폭스바겐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사 브랜드를 전기차와 연결시킨 수백만 개의 뉴스 헤드라인과 게시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며 "그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폭스바겐의 만우절 장난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까지도 오히려 폭스바겐에 대한 주목도를 높였다"며 "또한 폭스바겐의 농담은 소비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폭스바겐의 만우절 농담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언론과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의견일 뿐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이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며 "폭스바겐이 기획한 만우절 농담의 핵심 목표는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폭넓게 다가가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폭스바겐의 사명 변경 농담은 역대 가장 많은 화제를 모은 만우절 마케팅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덕분에 전세계 소비자들은 폭스바겐의 전기차 사업에 큰 관심을 갖게 됐고, 앞으로 폭스바겐이 출시하는 전기차를 '볼츠바겐'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부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