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vs 광고대행사 '아이디어 주도권' 분쟁… 그 오랜 침묵을 깨다
광고주 vs 광고대행사 '아이디어 주도권' 분쟁… 그 오랜 침묵을 깨다
  • 김수경
  • 승인 2021.03.18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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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좋, 공식 인스타그램에 광고업계의 오랜 관례 비판글 올려
"광고주는 주님"… 광고주의 반복되는 부당함에 광고대행사는 눈치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파트너십 정착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필요"
ⓒ스튜디오좋 인스타그램 캡처

"광고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두 번째 전쟁이 시작된다."

국내 유수의 독립 광고대행사 '스튜디오좋'의 대표는 최근 공식 인스타그램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스튜디오좋 인스타그램 캡처

"캠페인 종료 후엔 이 모든 기획이 광고주분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잔인하게 덧붙인다. 스좋(스튜디오좋)이 사진을 찍었다고. 작사를 했다고. 디자인을 했다고. 업무의 일부분을 나눠주는 그 구절, 그것을 통해 우린 확실하게 낙인된다. '그 기획 파트'는 우리가 참여한게 아닌걸로. (중략) 승리를 이끌어 준 멤버들에게 좌절감을 상 대신 줘야한다. 잊을만하면 반복된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광고계에서 오래오래 일할 수 있을까."

스튜디오좋의 글은 국내 광고업계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 간 '아이디어 주도권' 분쟁에 대한 광고대행사의 속내를 가감없이 보여주며 화제를 모았다. 계약상 '갑'인 광고주의 눈치를 보느라 쉬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철저한 '을'인 광고대행사의 이례적인 외침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다.

광고대행사의 노고와 기여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광고주의 태도에 스튜디오좋은 좌절감을 표했다. 스튜디오좋의 글은 비단 특정 광고주를 겨냥한 저격글이 아닌, 반복되는 두 번째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고 광고계에서 오래오래 일하고 싶은 광고대행사의 오랜 속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 광고의 전쟁

계약상 '을'인 광고대행사는 '갑'인 광고주의 고민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한 광고와 마케팅 활동 전반을 대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대가로 광고주는 그에 합당한 광고계약 대금을 광고대행사 측에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경쟁 프리젠테이션(PT)라는 예선을 통과해야만 한다. 한 기업의 광고 대행 계약을 따내기 위해 여러 광고대행사들이 경쟁 PT에 참여한다. 적게는 2~3개, 많게는 그 이상의 광고대행사들이 각자 준비해 온 제안서를 바탕으로 광고주 앞에서 경쟁 PT를 펼치게 된다. 제안서 작성에는 수많은 인력과 시간, 비용이 투입되지만 경쟁PT의 승자는 오직 한 곳이다.

경쟁PT에서 우승한 광고대행사는 광고 대행 계약을 맺은 뒤에야 비로소 진짜 광고의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광고대행사가 대행한 광고와 캠페인은 광고주를 만족시키는 것은 물론, 시장과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구체적인 비즈니스 성과까지 내야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개의 광고와 마케팅, 캠페인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만, 그 중 성공적인 광고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 부어 단순 노출도를 높이는 것과, 모두가 인정하는 '잘 만든 광고'로 인정받는 것은 별개다.

스튜디오좋이 대행한 홈플러스의 '소비패턴'과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캠페인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 지난해 대한민국광고대상에서 소셜커뮤니케이션 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크리에이티비티 능력까지 인정받으며 치열한 광고의 전쟁에서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 보이지 않는 두 번째 전쟁의 시작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는 독립된 개별 회사지만, 광고 대행 계약을 맺는 순간 마치 하나의 팀처럼 협업하는 체제를 이루게 된다. 최근 광고대행사의 역할이 단순히 광고를 대행하는 것을 넘어, 광고주의 고민을 해결하고 비즈니스에 대한 전반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획 업무로까지 확대되면서 협업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는 추세다.

광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나의 광고가 나오기까지 수많은 협의와 회의를 거치게 된다. 광고의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는 광고주와 대행사가 협업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고 다듬어지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아이디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대행사에서 제안한 아이디어 그대로 광고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광고주의 의견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반영되는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서로 협업해 핵심 아이디어를 완성해나가기 때문에 단순 갑을 관계가 아닌, 파트너 관계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A는 광고주의 아이디어, B는 대행사의 아이디어'와 같이 아이디어의 주도권을 무 자르듯 명확하게 나누는 것도 애매하기 때문에 양측의 배려와 예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튜디오좋엔 AE, CD, 아트디렉터, 카피라이터가 존재한다. 그들은 기획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PR이 세상에 퍼지는 순간, 그들의 시간과 존재는 한 순간에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스튜디오좋 인스타그램 게시글 일부) 

스튜디오좋은 광고의 전쟁에서 이긴 승리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두 번째 전쟁을 마주하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했다. 기획에 대한 핵심적인 공은 광고주 자신의 것으로 돌리고, 광고대행사는 협업 파트너가 아닌 부수적 업무를 도운 조력자 쯤으로 표현한 언론 인터뷰에 자신들의 시간과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스튜디오좋뿐만 아니라 많은 광고대행사들이 비슷한 일을 자주 겪는다"며 "음지에서 일하는 대행사의 숙명이라며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고업계의 아주 오래된 불편한 관행에 반기를 들고 용감하게 목소리를 낸 스튜디오좋의 용기가 한편으론 고맙게 느껴진다"며 "갑을 관계에서 탈피해,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구조와 태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 "광고주는 주님?" 관례와 악습 사이

광고업계에는 광고주를 '주님(광고주님의 줄임말)'이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대행사에게 있어 광고주의 파워는 막강하다. 특히 재계약을 바라는 대행사들은 광고주의 무리한 요구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명확한 기준이 없거나 납득할 수 없는 수정 요구를 수차례 막무가내로 요청하는 광고주, 퇴근 시간 후나 주말에도 업무 지시를 내리는 광고주, 해외 광고제에 작품을 출품할 때 대행사 대신 본인들이 직접 출품하겠다고 요구하는 광고주, 경쟁PT 때 제시했던 계약 내용과 달리 수차례 운영비를 삭감하거나 캠페인 진행 전략을 무리하게 수정하려는 광고주 등 부당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광고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광고주의 무리한 요구에도 대행사는 침묵하고 따를 수 밖에 없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참고 넘기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광고주의 부당한 요구는 참고 견뎌야 할 관례가 아닌 악습"이라고 지적했다.

△ 대행사가 달라진다

보수적인 광고업계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들이 광고업계에 새로운 피로 유입되면서 업계의 오래된 관행에 반기를 들고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업 계열 광고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광고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들은 광고주의 부당한 요구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지만 MZ세대들은 다른 태도를 취한다"며 "자신의 아이디어, 자신의 노력에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업무에서 마주하게되는 부당함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광고주가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합리적인 설득 과정을 거치고 만족할만한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새로운 업무 트렌드를 보여준다"며 "최근에는 대행사를 파트너로서 존중해주는 광고주들도 많아지고 있어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광고 대신 브랜드의 숨은 가치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내는 브랜드PT(Presentation)를 선보이는 29CM(이십구센티미터)는 광고대행사와 비슷한 업무를 진행하지만, 광고주와의 갑을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파트너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가고 있다.

29CM는 브랜드PT를 진행하는 업체를 '광고주'가 아닌 '협력사'라고 표현하고, 자료 수정 횟수도 사전에 협의하는 등 수직구조를 탈피해 수평적 관계를 확립했다. 또한 29CM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맞지 않는 브랜드와의 협업은 정중히 거절하는 전략을 고수하면서 대행사가 아닌 독립 브랜드로서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HS애드의 광고주인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 광고 캠페인을 대행한 HS애드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지난 2019년 헌정 광고를 집행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민족' 카피를 패러디한 'HS애드도 우리 민족이었어'라는 감사 문구와 함께 기획과 제작을 담당한 HS애드 직원들의 이름을 모두 광고에 담았다. 이는 광고주가 대행사에 헌정 광고를 낸 사상 최초의 사례로 주목받으며 업계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우아한형제들의 HS애드 헌정 광고. ⓒHS애드

△ 광고계에서 오래오래 일하려면

반복되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 광고계에서 오래오래 일하기 위해, 광고업계는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광고 대행 계약시 불공정하고 부당한 업무 지시 금지에 대한 내용을 추가하고, 광고 기획이나 저작권 등과 관련한 별첨 계약서를 요구하는 등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기준없는 수정 요청 금지, 커뮤니케이션 채널 단일화, 수정 횟수 제한과 같은 내용을 담은 계약 조건을 추가하는 등 대행사가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모든 광고대행사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건강한 관계는 결과적으로 광고주에게 더 좋은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는 초석이 된다"며 "앞으로도 협력하고 공생해야하는 파트너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하루 빨리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