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2008·2010·2020, 크리에이티비티를 위한 변론
[이성복] 2008·2010·2020, 크리에이티비티를 위한 변론
  • 이성복
  • 승인 2020.11.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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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비티가 브랜드를 11배 성장시켜
‘광고’가 아닌 ‘크리에이티비티’의 시대
2019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행사장 안에 '크리에이티비티의 미래를 보다"(See the Future of Creativity)라는 슬로건이 걸려있다. ⓒCannes Lions
2019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행사장 안에 '크리에이티비티의 미래를 보다"(See the Future of Creativity)라는 슬로건이 걸려있다. ⓒCannes Lions

[이성복의 사자吼]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란 무엇인가?

크리에이티비티는 광범위한 의미로 '인류의 일상과 문명을 풀어나가는 지혜'라고 말 가둬볼 수도 있겠지만 딱 떨어지는 정의를 내리긴 무척 어렵다. DDB의 설립자 베른바흐(Doyle Dane Bernbach)는 “크리에이티비티란 사랑과 같아서 분석할수록 희미해지니 정의를 내리려고 너무 애쓰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BBDO 데이비드 루바스(David Lubars) 회장은 "크리에이티비티는 정의하긴 어렵지만 알아보기는 쉽다"고 했다.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광고(Advertising)’라 부르고, 광고대행사나 제작사는 '솔루션(Solution)'이라 불렀을 법한 그 것. '브랜드 캠페인(Brand Campaign)'의 출발선부터 크리에이티비티의 정의는 토론과 논쟁을 부른다.

크리에이티비티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아도 BBH 설립자 헤거티(Sir John Hegarty)의 말마따나 "효과(Effectiveness)는 우리의 목표이고, 크리에이티비티는 우리의 전략이다."

▲ 크리에이티비티가 브랜드를 11배 성장시킨다

지난 2018 칸 라이언즈 필름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P&G의 'The talk'. ⓒCannes Lions
지난 2018 칸 라이언즈 필름 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P&G의 'The talk'. ⓒCannes Lions

#2008년 칸라이언즈(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 옛 칸 국제광고제)는 '올해의 광고주'상에 P&G를 선정했다. 최근 수년 간 칸라이언즈의 사자 트로피를 다수 받은 기업으로서 시장 점유율과 주가 상승이 뚜렷한 기업에 주는 상이다.

당시 P&G의 마케팅팀은 짐 스텐젤(Jim Stengel) CMO의 주도로 칸 라이언즈 수상에 전력을 기울였다. ’올해의 광고주상‘을 받기 한 해 전인 2007년에도 칸 라이언즈에서 무려 14개의 사자 트로피를 받았다.

'창조적(Creative)'이었던 것은 광고만이 아니다. P&G는 상품 디자인과 R&D 분야 등 모든 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경영 측면에서도 경이로운 성적을 냈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매출은 430억 달러에서 830억 달러로, 매출이 10억 달러 이상인 브랜드는 9개에서 25개로, 주당 이익은 4배로 올랐다. 주가 역시 그때까지 역대 최고 기록(74.67달러·2007년 12월 12일)을 세웠다.

이후 해를 이어가며 칸 라이언즈 수상작이 급증한 폭스바겐, 삼성전자, 구글, 애플 등이 기록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며 차례로 칸 라이언즈 ‘올해의 마케터’상을 받았다.

2008년은 크리에이티비티가 브랜드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P&G의 수상으로 웅변한 상징적인 해이다. 현재는 칸 라이언즈의 아카데미를 맡고 있는 짐 스텐젤의 회고에 따르면 2001년까지 P&G는 우뇌를 어디다 써야 할지 모르는 기업이었다. 세계 1위의 생활용품 기업으로서 규모와 성과에 안주해있던 거대기업이 ‘크리에이티비티 드라이브 경영’으로 수년만에 매출이 2배 이상 뛰어오르는 성과를 냈다.

크리에이티비티 어워드를 많이 받은 기업의 성과가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 ‘올해의 마케터상’ 수상 기업들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보다 앞서 몇몇 선각자들이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해낸 바 있다. 1996년 레오 버넷의 도날드 건이 이를 최초로 비교 분석한 이래, 2005년 무렵부터 IPA의 피터 필드, Y&R의 제임스 허먼 등이 유수의 광고대행사와 광고효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 ‘광고’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비티’다 

#2010년 제임스 허먼(James Hurman)은 저서  ‘상 받는 광고가 11배 잘 팔린다 (문예마당 2011・The Case For Creativity)’를 내고 지난 10년 간 브랜드의 광고제 수상작과 시장점유율의 상관관계를 조목조목 분석해 세계 광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상받는 광고가 11배 잘 팔린다 (The Case For Creativity)’를 집필한 제임스 허먼(James Hurman). ⓒCannes Lions
‘상받는 광고가 11배 잘 팔린다 (The Case For Creativity)’를 집필한 제임스 허먼(James Hurman). ⓒCannes Lions

동시에 광고계는 또 하나의 뉴스를 접하게 된다. 제 58회를 맞은 칸 국제광고제(Cannnes Lions 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가 페스티벌 타이틀을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로 바꾼 것이다.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마케팅에서 ‘광고(Advertising)로 품을 수 없는 영역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개인화, 다변화, 복합화가 일상으로 침투하자 광고계는 전통적으로 일감을 주던 마케팅 분야뿐 아니라 경영 전반을 대상으로 컨설팅과 솔루션까지 제시하며 ’크리에이티비티‘의 정의와 범위를 새롭게 세우기 시작했다.

광고의 영역을 기업, 정부, NGO, 연예계 등을 포괄하는 광활한 인류 문명의 광장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칸라이언즈 해변의 부스를 차지하는 기업들도 코카콜라, 맥도널드 같은 전통적 글로벌 대기업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삼성전자 같은 IT와 플랫폼 기업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의 공식 명칭은 ‘칸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이다. 2019 칸라이언즈 세미나 무대 모습. ⓒCannes Lions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의 공식 명칭은 ‘칸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이다. 2019 칸라이언즈 세미나 무대 모습. ⓒCannes Lions

이전까지만 해도 기발한 광고와 창조적인 광고는 '광고쟁이'들끼리나 통하는 '그들만의 리그'로 간주됐지만 이제는 마케터, 미디어, 인플루언서, 연예인까지 참여하는 크리에이티비티의 글로벌 채널이 됐다.

’광고‘에서 ’크리에이티비티‘로 환골탈퇴의 진화를 하면서 칸 라이언즈는 모든 개인과 조직의 브랜딩과 성장에 관해 토론하고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축제로 거듭났다. 2010년이래 ’광고‘란 말은 ’선전‘만큼이나 협소하고 구식인 단어가 됐다.

▲접근성, e커머스, 액티비즘의 시대

#2020년, 해마다 1만5000여명의 크리에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케터, 미디어 관계자들이 모여 수백여 세션의 세미나와 워크샵을 열어 아이디어와 테크놀로지의 경연을 벌이던 칸 라이언즈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COVID-19)의 직격탄을 맞았다.

6월마다 프랑스 칸 해변에 모여들던 수많은 기업들의 갈증을 어떻게 풀 것인가? 칸라이언즈는 비대면 시대의 축제를 위한 해법으로 ‘라이언즈 라이브(Lions Live)’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크리에이티비티 산업계 인사들의 강연과 토론을 유튜브로 무료 생중계하고 일정기간 VOD로도 볼 수 있게 했다. 100편 가까운 세미나들이 공개됐고 수십만명이 이를 시청했다.

어워드 경쟁은 한 해 미뤘지만 세미나 프로그램은 온라인으로 더욱 편리하게 접근이 가능했다. 한국에서도 ‘SDGs포럼 x 칸라이언즈’가 열려 '라이언즈 라이브'의 주요 프로그램을 한글 자막과 함께 공개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도 크리에이티비티가 멈추면 인류 문명이 멈추게 될 터이다. 얼굴을 맞대고 모여서 소통하는 축제의 본질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온라인 축제에 사람들은 얼마나 가치를 지불할 것인가? 여러 과제를 남기고 해는 2021년으로 넘어가지만 칸라이언즈 축제는 크리에이티비티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일깨웠다. 칸 라이언즈에서 칸이 빠져도 라이언즈가 상징하는 크리에이티비티는 더 소중해졌음을 더 많은 시청자들이 알게 됐다.

코로나 위기 직전인 2019년 칸라이언즈는 참관단의 수많은 입을 정리해 세가지 키워드를 도출해냈다. 2019-2020년 크리에이티비티 산업의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접근성(Access), 전자상거래(e-commerce), 행동주의(Activism)다.

‘접근성’은 장애, 인종, 성 등의 차별을 이겨내는 제품이 환영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커머스’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플랫폼으로 언제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전자상거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액티비즘’은 기업이나 브랜드가 사회적 공헌을 통해 참여와 헌신의 목소리를 내야 소비자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바야흐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브랜드가 사회공헌에 뛰어들어야 생존하는 ‘액티비즘’의 시대, 비대면의 ‘이커머스’ 시대, 차별없이 함께 나누는 ‘접근성’의 시대가 열렸다. [칸라이언즈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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