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통신사가 출시한 몰래쓰는 앱 '레드 라이트'에 숨겨진 크리에이티비티
[칸 뉴노멀] 코로나19 위기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반의 비대면 경제와 문화가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으며 사람들의 생활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습니다. 칸 라이언즈에서 공개된 글로벌 크리에이티비티를 통해 뉴노멀 시대를 위한 다양한 영감(inspiration)을 제안합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전세계 보건 및 위생 뿐 아니라 가정 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외부활동과 외출을 제한하고 자가격리 기간이 늘어나면서 가정폭력의 사각지대는 오히려 넓어지게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지난 4월 발표한 'COVID19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 보건계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COVID-19 and violence against women What the health sector/system can do)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최고조에 달했던 올 2월 한 달 동안 중국 후베이성 징저우시에서는 전년 대비 가정폭력 신고건수가 3배 증가했다.
세계 최대의 크리에이티비티 축제인 칸 라이언즈(The 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에서 수상한 성별 차이에 따른 범죄와 가정폭력을 다룬 캠페인 6개 작품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공유한다.
5. 보다폰 레드 라이트 앱(Vodafone Red Light Application)
수상내용: 미디어 부문(Media Lions) 그랑프리(Grand Prix)
출품사: 영&루비캠 이스탄불 (YOUNG & RUBICAM ISTANBUL)
광고주: 보다폰 (VODAFONE)
"이 앱은 너무 많이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공유해주세요."
지난 2014년 너무 많이 알려지면 안되는 비밀스러운 앱(App)이 터키에서 출시됐다. 손전등 기능을 하는 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정폭력과 같은 위기에 처한 여성들이 가해자 눈에 띄지 않고 조심스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앱이다.
터키는 여성 3명 중 1명이 가정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중심적 문화속에서 가정 내 문제를 외부로 잘 드러내지 않으려하는 문화적 특징이 있어 그 피해는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었다.
텔레커뮤니케이션 회사인 보다폰(VODAFONE)은 대행사 영&루비캠 이스탄불(YOUNG & RUBICAM ISTANBUL)과 함께 터키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 터키 여성만을 위한 특별한 앱을 고안했다. 보다폰의 '레드 라이트'(Red Light) 앱은 몰래 사용해야하는 환경에 맞춰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등이 한 번에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숨겨져있다.
손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아래에서 위로 밀면 메뉴가 보이는데 여기에는 응급상황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들의 전화번호가 나와있다. 그 아래부분에는 사용자가 믿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주변인 세 사람의 연락처를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 번호를 모두 입력한 뒤 '흔들어 도움청하기'(Shake&Warn) 모드로 활성화 시켜두면 된다.
이렇게 휴대전화에 앱을 설정해두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휴대전화기를 흔들기만 하면 된다. 기기의 흔들림을 감지한 보다폰 '레드 라이트'앱이 미리 저장해 둔 믿을만한 주변인 세 명의 번호로 사용자 위치를 포함한 메시지를 자동으로 전송하기 때문이다.
메시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황입니다. 나에게 연락해주세요. 만약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내가 있는 위치는 OOO 입니다."
'레드 라이트 '앱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외부에 들키지 않고 조용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피해자 입장에서의 상황을 고려했다. 메시지를 받은 주변 지인들은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하고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지켜낼 수 있다.
보다폰의 '레드 라이트'는 앱 자체의 기능도 중요했지만 어떻게 홍보하고 알려야 하는지도 큰 고민이었다. 누구에게나 앱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더욱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여성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구별된 마케팅 접점을 찾아야 했다.
대행사 영&루비캠 이스탄불 팀은 여성 사용자만을 선별하기 위해 공공장소에 있는 여자화장실 내부, 여성용 왁싱 스티커 포장지, 여성용 속옷 상표에 넣는 방식으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은밀히 '레드 라이트' 앱을 소개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 채널에는 몇 개의 '가짜 영상'을 퍼뜨렸다. 주로 여성들이 관심있게 시청하는 주제와 화장법, 손톱정리 및 뜨개질 방법을 알려주는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해 영상을 보는 이들에게만 '레드 라이트' 앱의 존재를 소개하고 사용법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화장법을 알려주는 영상의 중간 부분, 갑자기 화면 속 주인공은 "그런데 왼쪽 아이라이너를 그리기전에, 제가 잠깐 알려드릴게 있다. 여자들끼리만 할 수 있는 얘긴데, 이건 좀 더 사적인 얘기"라며 가정폭력의 위기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레드 라이트' 앱을 소개한다.
영상 말미에 그는 "이 앱은 비밀스럽게 사용해야 하므로 관련 내용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공유할 때 자세한 내용을 게시글에 적지 않도록 부탁한다"며 "이 영상을 보는 당신은 절대로 '레드 라이트' 앱이 필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지난 2014년 '레드 라이트' 앱 출시 첫해 25만4000명의 여성들이 앱을 다운로드 받았고 이 숫자는 터키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든 여성들의 약 24% 규모다. 이 앱은 한 해 동안 10만3122회 이상 작동됐다.
첫번째로 출시된 앱은 초기 기획과 다르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면서 공개적으로 알려지게 돼 사실상 쓸모가 없어졌다. 보다폰은 무엇보다도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수있다'는 비전을 갖고 두번째 업데이트 버젼을 출시했다. 이번엔 거울처럼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위장 앱을 만들었다.
앱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도 진화했다. 유튜브의 영상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남성 사용자가 해당 영상을 보려 할때는 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다른 요소를 배너로 추천함으로써 시선을 돌렸다.
보다폰 통신사를 이용하는 여성 고객들에게는 음성으로 앱의 존재를 알렸다. 음성 메시지를 수신한 여성 사용자들은 해당 메시지를 다른 여성 사용자들에게도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보다폰은 음성인식 시스템을 이용해 전화 수신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가려냈다. 남성이 전화를 받는 경우에는 보다폰의 일반적 할인 안내 메시지를 전달 하도록 했다.
보다폰은 "우리는 누구도 더 이상 이 앱을 필요로 하지 않는때가 오길, 그리고 다른 버전의 앱이 더 이상 출시되지 않아도 되는 그런날이 오길 소망한다"고 강조했다. 보다폰은 '레드 라이트' 앱을 통해 가정 폭력의 피해에서 벗어난 파트마 에이(Fatma A.)라는 실제 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전했다.
보다폰의 '레드 라이트' 앱은 지난 2015년 칸 라이언즈 미디어 부문 그랑프리, 골드라이언, 프로모&엑티베이션 부문 실버라이언, 모바일 부문 브론즈라이언 등 4개의 라이언즈를 수상했다.
이번 달 열릴 예정이었던 칸 라이언즈는 전례없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로 오프라인 페스티벌 개최를 취소하고 6월 한 달 간 라이언즈 라이브(Lions Live)를 통해 온라인으로 크리에이티브 콘텐츠를 제공한다.
2021년 칸 라이언즈 페스티벌은 6월 21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남부도시 칸(Cannes)에서 열린다.
